[뷰포인트] 日 수출규제 해제되면 '소부장 국산화' 노력은 물거품?
[뷰포인트] 日 수출규제 해제되면 '소부장 국산화' 노력은 물거품?
  • 장경윤·노태민 기자
  • 승인 2023.03.07 10:3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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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정부, 2019년 일본 수출규제 해제 위한 협의 진행 예정
수출규제 4년간 불화수소, 반도체 PR 등에서 국산화 성과 나와
전문가들 "수출규제 해제되어도 국산화 노력·수요 지속될 것"
출처 : 픽사베이
출처 : 픽사베이

4년 가까이 지속되고 있는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가 곧 해제될 가능성이 커졌다. 우리 정부가 수출규제를 촉발한 강제징용 관련 합의안을 제시함에 따라, 한일 양국이 조만간 수출규제 문제 해결을 위한 협의에 나설 예정이다. 유력한 시나리오는 일본의 수출규제 발표 이전으로 양국 관계를 되돌리는 것이다. 

일본의 반도체 수출규제가 풀릴 가능성에 대해 국내 산업계는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다. 국내 반도체 산업 공급망의 '잠재적 리스크'가 해소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한편으로는 우려의 목소리도 있다. 일본의 수출규제에 대응해 추진한 소·부·장(소재/부품/장비) 국산화 의지와 노력이 희석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처음엔 극도의 공포를 초래했고, 나중엔 국산화 의지를 키우는 동력이 됐던 일본 수출규제가 풀린 이후, 우리 반도체 공급망과 소부장 생태계에는 어떤 영향이 미칠까.

◆ 日수출규제 4년이 남긴 흔적 

2019년 7월1일. 이날 일본 정부는 전격적으로 '대(對) 한국 수출규제'를 발표했다. 타깃은 한국 반도체·디스플레이 산업이었다. 일본산 소재 의존도가 높은 한국 주력산업을 겨냥해 반도체 공정에 주로 쓰이는 불화수소와 포토레지스트, 디스플레이 공정에 쓰이는 불화폴리이미드 등 3가지 소재 수출을 규제했다. 바로 다음달에는 수출 절차를 간소화해주는 '화이트리스트'에서도 한국을 제외했다.

"이러다 우리 주력산업인 반도체 공급망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려가 터져나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수출규제 품목은 국내 반도체 제조업체가 대부분 일본으로부터 수입해 온 소재들이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2019년 상반기 기준 대(對) 일본 불화수소 수입 비중은 44%, 포토레지스트는 92%에 달했다. 국내 반도체기업 입장에서는 당장이라도 소재를 일본에서 들여올 수 없는 리스크를 떠안은 셈이었다.

우리 정부와 산업계는 즉각 대응에 나섰다. 2019년 8월5일 정부는 '소부장 경쟁력 강화대책'을 내놨다. 대책의 핵심은 기술 자립과 국산화였다. 기업들도 수입처 다변화 등 속도전에 나섰다. 성과도 조금씩 나타났다. 국내 유수의 업체들이 첨단 반도체 공정에 쓰이는 초고순도 불화수소와 EUV(극자외선)용 포토레지스트를 개발해내는 성과를 거뒀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반도체 핵심품목 수입액의 일본 비중도 2018년 34.4%에서 2022년 24.9%로 9.5% 감소했다.

물론 소부장 국산화의 성과가 만족스러웠던 건 아니다. 그럼에도 일본 수출규제 여파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던 건, 수출규제가 곧 수출금지는 아니었던 이유도 크다. 최리노 인하대학교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일본 수출규제에 대해 "실질적인 악영향은 없었다"고 평가했다.

최 교수는 "해당 규제는 소재를 들여오지 못하도록 원천 차단한 것이 아닌, 단순히 수출 승인을 개별적으로 받도록 만든 것"이라며 "잠재적인 위험성은 지속됐으나 일본으로부터 핵심 소재를 문제없이 수급해 왔고, 국산화로 대처한 부분도 있다"고 설명했다.

출처 : 한국무역통계진흥원
출처 : 한국무역통계진흥원

◆ 소부장 국산화가 이룬 결실들

결과적으로 4년여간 일본 수출규제의 여파는 '공포'보다는 '감내할 수준' 정도였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오히려 그 과정에서 소부장 국산화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됐다는 평가도 있다.

실제로 국산화 성과도 여럿 나왔다. 일본산 수입대체에 가장 성공한 품목은 불화수소다. 지난해(2022년) 기준 일본에서 수입한 반도체 제조용 불화수소의 수입금액은 830만달러, 수입중량은 3451톤으로 수출 규제가 시작되기 전인 2018년 대비 각각 87.6%, 91% 감소했다. 국내 기업인 솔브레인과 SK머트리얼즈의 국산화와 수입처 다변화를 통해 이룬 성과다.

솔브레인은 2020년 초 액체 불화수소 공장을 조기 완공해 12N급의 초고순도 액체 불화수소 양산에 성공했다. SK머트리얼즈는 2020년 중순 액체 불화수소 대비 개발 난이도가 높은 불화수소 가스 양산을 3N급의 초고순도 제품으로 양산하기 시작했으며, 올해까지 국산화 70%를 목표로 잡고 있다. 

포토레지스트의 경우 일본 글로벌 점유율이 워낙 높아 일본 의존도를 낮추는데에는 실패했다. 그럼에도 동진쎄미켐은 지난해 말 EUV 포토레지스트 양산에 성공해 반도체 고부가 소재 국산화에 앞장서고 있다. 동진쎄미켐은 EUV PR뿐 아니라 최근 무기물 PR 개발에도 나선 상황이다.

수출규제는 일본 기업들에도 영향을 끼쳤다. 까다로운 수출규제 탓에 한국에 생산라인을 구축하는 일본 기업들도 늘었다. 일본 스미토모화학 자회사인 동우화인켐은 2021년 9월 100억엔을 투자해 전북 익산에 생산라인을 건설해 지난해 중순부터 EUV 포토레지스트 생산을 하고 있다. TOK(도쿄오카공업)도 인천 송도에 위치한 공장에서 EUV 포토레지스트를 양산 중이다.

◆ 수출규제 해제 이후, 어떤 일이...

4년 만에 일본의 수출규제가 풀릴 가능성은 현재로선 거의 확정적이다. 양국 정부가 WTO 분쟁해결절차를 잠정 중단하고 협의에 나서기로 사실상 합의했기 때문이다. 

일본 수출규제가 해제되는 경우, 국내 반도체 핵심 소재에 대한 공급망은 빠른 속도로 안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일부 국산화 성과가 있지만 여전히 반도체 등 전자산업 분야에서 일본산 소재·부품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수출규제 해제 이후 소부장 국산화 노력이 위축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아직까지 비교우위에 있는 일본산 소재, 부품으로 수요가 쏠릴 수 있다는 얘기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일본 수출규제 이후에도 국내 반도체 업체들의 국산화 기조는 지속될 것이라는 데 의견을 모으고 있다.

안기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무는 "핵심 소재를 수급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도 느끼지 못했던 국내 반도체 업계가 전례없는 일본의 수출 규제로 공급망에 대한 위험성을 인지하게 됐다"며 "향후에도 얼마든지 비슷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수출규제가 풀린 뒤에도 국산화에 대한 의지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도 "국산화는 곧 다변화 전략의 하나"라며 "다변화를 해야만 반도체를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배운 우리 기업들이 수출규제가 풀린다고 해서 국산 제품을 외면하거나, 국산화를 멈추려고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오히려 반도체 산업에서 정치적인 요소가 빠지면서 한국, 일본 업체간의 R&D, 기술 협업이 보다 자유롭게 진행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국내 반도체 대기업들의 반응도 엇비슷했다. 익명을 요구한 A대기업 관계자는 "국내 산업의 여건상 소부장 국산화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공급망 이슈가 있을때 부분적으로 대체할 정도의 국산화에만 성공해도 국내 반도체 산업에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디일렉=장경윤·노태민 기자 jkyoon@thele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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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대학원생 2023-03-18 01:28:38
그나마 좀 나은 기사네요. 다른 애들은 뭐 국산화 다 된 것마냥 써놓아가지고.. 솔직히 일제 제품이 아직도 대다수인데 정신승리하느라 다들 바쁘덥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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