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정부 가드레일 발표...한국 반도체기업 앞에 주어진 '제한된 선택지'
美정부 가드레일 발표...한국 반도체기업 앞에 주어진 '제한된 선택지'
  • 강승태 기자
  • 승인 2023.03.2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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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보조금 받으면 10년 동안 中 생산 5% 이상 못 늘려
웨이퍼 투입량 증가는 제한되지만 기술적 업그레이드 가능
오는 10월 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 통제 연장 여부가 관건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출처 : 삼성전자)
삼성전자 중국 시안 공장(출처 : 삼성전자)

국내 반도체 업계 초미의 관심사였던 미국 정부의 반도체지원법(CHIPS Act) 보조금 ‘가드레일’ 규정이 21일(현지시간) 공개됐다. 반도체 업체들이 미국 보조금을 받을 경우 향후 10년간 중국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5% 이상 확장하지 못하게 하는 게 골자다. 다만, 생산능력의 경우 반도체 생산에 투입되는 ‘웨이퍼 투입량’으로 규정해 기술적 업그레이드에 대해서는 제한하지 않기로 했다. 

일단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게 국내 반도체 업계 평가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미국 보조금을 받아도 기존 운영했던 중국 공장에서 웨이퍼 투입량을 유지하면서 미세공정 전환으로 생산량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반면, 미국의 대(對)중국 반도체 장비 규제가 유지되는 한 기술적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하다는 우려도 크다. 국내 반도체 업계 관계자들은 “오는 10월 반도체 장비 중국 수출 통제와 관련해 추가 유예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입을 모은다.

◆ 미국 보조금 가드레일 살펴보니...

미국 상무부는 반도체법 지원금이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용도로 사용되지 않도록 설정한 가드레일 조항의 세부 규정안을 관보 등을 통해 공개하고 60일간의 의견수렴을 거쳐 확정한다고 밝혔다. 한국 기업들이 우려했던 기술적 업그레이드에 대해 미국 상무부 측은 “5% 생산(증가) 제한을 넘지 않고 미국 수출통제를 준수하는 한 기술적 업그레이드는 가능하다”면서 “생산능력을 5% 이상 확대하지 않는 한 반도체법이 새로 부과하는 제한은 없다”고 밝혔다.

앞서 미국의 반도체법은 “보조금을 받은 기업이 이후 10년간 중국 등 우려 국가에서 반도체 생산능력을 ‘실질적으로 확장’(material expansion)하는 ‘중대한 거래’를 할 경우 보조금 전액을 반환해야 한다”고 규정한 바 있다. 여기서 ‘실질적 확장’과 ‘중대한 거래’의 구체적 의미가 무엇인지 중요했다. 

이날 새롭게 공개한 규정안에서 상무부는 ‘실질적인 확장’을 양적인 생산 능력 확대, 즉 웨이퍼 투입량으로 규정했다. 또 ‘중대한 거래’ 규모를 10만 달러(약 1억 3000만원)로 정의했다. 

가드레일 세부 조항에는 첨단 반도체 기준이 제시됐다. 로직 반도체는 28나노(나노미터·10억분의 1m), D램은 18나노, 낸드플래시는 128단 등이다. 이보다 높은 수준의 반도체를 중국에서 생산하면 웨이퍼 투입량을 현행 대비 5% 이상 늘릴 수 없다. 전통 공정의 경우 웨이퍼 투입량 증가폭이 ‘10년간 현행 대비 10% 이내’로 제한된다. 미국은 이날 제시한 첨단 반도체 기준도 주기적으로 바꿔나갈 방침이다. 미국 상무부 측은 “반도체 법에 2년마다 첨단 반도체 정의를 다시 검토하게 돼 있다”고 밝혔다. 2년마다 잣대를 바꾼다는 얘기다. 

◆ 국내 반도체 기업에 미치는 영향은?

일단 이번에 나온 가드레일의 내용은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지으면서 보조금을 신청한 기업이 대상이 된다. 미국 테일러에 파운드리 팹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가 보조금을 신청하면 이 기준을 적용받는다. 현 시점에서 미국 내 반도체 투자를 하고 있지 않은 SK하이닉스는 이번 가드레일 적용 대상이 아니다. 물론 SK하이닉스가 추후 미국 투자를 진행할 경우엔 가드레일의 적용을 받을 수 있다.

가드레일에 명시된 공정만을 기준으로 본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직접적인 규제를 받는다. 현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에서 미국이 규정한 첨단 반도체보다 높은 수준의 반도체를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는 중국 시안에서 6세대(128단) 이상 V낸드를 생산 중이다. SK하이닉스는 우시에서 10나노 중후반대 D램을 생산 중이다.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플래시 생산량의 40%, SK하이닉스는 D램 50%를 중국에서 만들고 있다. 이들 업체들은 미국 정부의 보조금을 받을 경우 일반적으로 5%의 생산능력 확장 제한 조치를 받을 것으로 보인다.

다행인 점은 미국 정부는 중국 내 반도체사업을 당장 금지하거나 기술 업그레이드를 막는 극단적인 카드를 꺼내진 않았다는 것이다. 반도체 산업은 기본적으로 웨이퍼 투입량이 증가하면 생산량이 증가하는 구조다. 때문에 국내 업계는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는 입장이다. 반도체 생산량을 확대하는 방법은 웨이퍼 투입량을 늘리는 것 외에도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통해 가능하기 때문이다. 웨이퍼 투입량을 유지만 해도 미세공정 전환을 통해 최종 생산되는 칩의 양을 늘릴 수 있다.

문제는 가드레일에 따라 5% 생산능력을 확장하고 싶어도 장비 반입이 막혀있다는 점이다. 미국 정부는 지난해 10월  중국 내에서 생산되는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 14나노 이하 로직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장비 수출을 통제한다고 발표했다. 최근에는 네덜란드 ASML이 EUV 장비에 이어 DUV 일부 장비의 중국 수출을 않겠다고 밝혔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중국 내 팹을 램프업 하고 싶어도, 장비 반입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오는 10월로 끝나는 미국 정부의 ‘1년 유예’ 조치 연장 여부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올해 유예 적용을 또 받는다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중국 쪽 장비 반입이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유예조치가 연장이 안되면 중국 팹 증설은 사실상 불가능해진다. 게다가 미국 정부는 4~5월쯤 대중국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를 더 강화하는 추가 조치를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삼성·SK 앞에 놓인 제한적 선택지

미국 정부의 가드레일 지침 발표, 대(對)중국 장비수출 유예 조치의 향방에 따라 삼성과 SK하이닉스 앞에는 제한적인 선택지가 놓이게 된다. 우선, 미국이 장비수출 유예조치를 1년 단위로 연장해줄 경우다. 이 경우 국내 반도체 기업들은 보조금 신청에 따른 손익을 따져본 뒤, 중국 팹을 최대한 업그레이드 하면서 유지할 수 있게 된다. 

반면, 미국이 장비수출 유예조치를 오는 10월로 중단하면 국내 기업들 입장에선 선택지가 극히 좁아진다. 결국 장기적으로 중국 투자를 줄일 수밖에 없다. 향후 10년간 ‘현상 유지’ 수준으로 공장 운영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중국 외 생산 기지를 다각화할 필요성은 한결 높아지고 있다. 

문제는 막대한 비용이다. SK하이닉스는 지난 2004년 이후, 삼성전자는 2013년부터 중국에 생산시설을 짓기로 결정한 이래 각각 30조원 이상을 현지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생산을 전면 포기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단이다.

삼성전자는 올 초 콘퍼런스콜에서 “시안 팹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기까지 굉장히 오랜 시간이 이미 소요됐다”며 “이미 많은 투자가 이뤄진 만큼 매우 신중한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SK하이닉스는 인텔에서 인수한 중국 다롄 낸드플래시 공장 때문에 고민이 더 깊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콘퍼런스콜을 통해 “생산 거점을 다변화하는 것은 중장기 시각에서 필수불가결하다”고 밝혔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D램 공장(출처 : SK하이닉스)
SK하이닉스 중국 우시 D램 공장(출처 : SK하이닉스)

업계 관계자는 "여러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결국은 우리 반도체 업체들이 10년 안에 중국에서 나오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미국이 대중 가드레일에서 기술적 업그레이드를 허용한 취지가 있는 만큼 올해 반도체 장비 수출통제 유예 협상 과정에서도 이 방침이 이어지도록 정부와 업계가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는 게 최우선 과제”라고 지적했다. 

디일렉=강승태 기자 kangst@thele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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